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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적도문학상 성인부 수필부문 이재민 / 우수상: 동남아신문 한나프레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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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구반 쁘라후(Tanguban Perahu)보다 고사리 " 너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너는 울었고 세상은 즐거워했다. 너가 죽었을 때 세상이 울고 너는 기쁠 수 있도록 삶을 살아라." -인디언 격언- 땅구반 쁘라후(Tanguban Perahu)로 향하는 2차선 굽은 도로. 구김 없이 쭉쭉 자란 나무들이 도열하여 한낮에도 서늘한 그늘을 드리운다. “엄마, 저기서 사진을 찍으면 간혹 그 뒤에 귀신이 보인다고 해요.” 불혹이 넘은 아들의 허튼 소리에 칠순이 넘은 엄마가 “에구 무서워라.” 맞장구를 친다.” 하나도 안 무서워하는 눈치다. “칠십을 살다보니 귀신은 무섭지 않은데, 사람은 무섭더라...” 선문답을 한다. 사람이 무섭다는 엄마는 마주 오는 차와 부딪칠 듯 간신히 앞 차를 추월하는 현지 운전수의 난폭 운전을 더욱 무서워하는 것 같다. 바싹 얼어붙어 한 마디도 못한다. 그렇게 삼십 분쯤 한 시간쯤. 엄마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나며, 이제는 앞에 추월할 차는 또 없을까 하는 눈치다. 은근히 곡예 운전을 즐기고 있다. 하염없이 구불구불 비탈길을 올라가는 차 안에서 “언제 도착하냐, 언제 도착하냐.” 묻고 또 묻는 모습이 내 어린 딸아이와 다르지 않다. “다 왔어요.” 하는 소리에 엄마는 봄나들이 나온 소녀처럼 비로소 활짝 기지개를 켠다. 엄마의 엉덩이가, 허리가, 팔다리가 비로소 웃는다. 나는 엄마를 볼 때면, 남한강 자락에 있던 우리 집과 바람에 말린 고사리 생각이 자주 났다. 엄마는 봄이 되면 정말 많디많은 고사를 캐오곤 했다. 어릴 때 산타클로스가 선물 자루를 펼치니 그 속에서 고사리가 쏟아지는 꿈을 꿨을 정도로, 내 기억 속 자루에는 늘 고사리가 한가득했다. 학교 갔다가 돌아와 고사리 삶는 냄새가 나거나, 마당 빨래 널어놓은 아래에 가지런히 바람을 맞고 있는 고사리를 볼 때면 비로소 봄이 깊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곤 했다. 사시장철 우리 집 밥상에는 고사리 음식이 끊이지 않았지만, 엄마 빼고는 누구도 그 고사리 음식에 진저리가 나서 젓가락을 쉬이 움직이지 못했다. 혹 다닥다닥 붙은 5남매가 봄 소풍을 가기라도 하면, 엄마는 참 많은 김밥을 싸야 했다. 친구들 김밥에 들어 있던 쏘세지 대신에 우리 집 김밥에는 고사리가 들어 있었다. 우리 5남매 김밥은 늘 부끄러웠다. 봄 소풍을 다녀온 날이면 우린 아무도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우리는 그 시절의 기억이 싫어 고사리를 먹지 않았다 …(이하 원문 참조)

출처 · www.indowe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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