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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조자연의 빈집
조자연 <빈집>
빈집
조자연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배부른 허기에
지문의 물결로 얼룩진
은색 냉장고 문을 열어요
텅 빈 냉장고는 고요한 설원,
하늘까지 그득히 쌓인 하얀 눈
그리고 은은하게 반짝이는 얼음 들판
마음마저 얼어붙는 이곳에서 나는
겨울 없는 나라에서 온 당신을 찾아요
당신의 발자국은 영영 보이질 않고,
주인 잃은 선홍빛 칠리소스만
얼음벽 뒤에서 모질게 나를 쳐다보네요
우리 인연은 끝없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당신은 유통기한이 다가온 듯
얼얼한 찬바람 속으로 숨어버렸어요
♠ 시 읽기)
간혹 필자에게 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이 질문을 더욱 넓게 들여다보자면, ‘ 무수한 예술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냐 ’ 로 되묻을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 시 ’ 라는 장르 또한 이미지의 예술이니, ‘ 이해 ’ 보다는 ‘ 느낌 ’ 을 강조하고 싶다. 인용시 「 빈집 」 은 어떤 느낌일까? 시인이 풀어놓은 단초들을 맞춰보자. ‘ 텅 빈 냉장고 ’ 와 ‘ 배부른 허기 ’, ‘ 마음마저 얼어붙는 이곳 ’ 과 ‘ 겨울 없는 나라에서 온 당신 ’ 을 대조시키며 이미지를 확산시키고 있다. 상반된 이니지가 대립하는 극명함 속에서 시인은 ‘ 당신의 유통기한 ’ 라는 변곡점을 찍는다. 굳이 ‘ 당신 ’ 이 누구일까에 머물기보다, ‘ 당신 ’ 의 자리에 ‘ 나 ’ 와 ‘ 우리 ’ 를 대입하면 어떨까?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다.
한 편의 시에서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고, 생각할 거리가 넘쳐난다면, 단연코 ‘ 좋은 시 ’ 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겠다. 그 해답을 「 빈집 」 을 읽으며 내내 곱씹어 본다. 당신의 유통기한은? 나의 유통기한은?
출처 · www.indowe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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