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마당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334~335회 문화탐방기

인도웹 아카이브댓글 …한인단체일반
한인회한인니문화연구원 334~335회 문화탐방기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기획탐방 5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한인 100년사 수석집필위원 사공 경 프롤로그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다. 나는 여기 ‘꽃’의 자리에 ‘역사’를 대신 쓰려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역사가 되었다.” 우리가 암바라와 고려독립당 투쟁현장과 돌아갈 곳 없는 위안부들의 아픔이 서린 현장을 찾아,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기록하는 것이 곧 역사를 만드는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100년사 탐방은 역사를 쓰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편찬 관계자와 한인들이 19일 인도네시아 암바라와 위안소 현장을 찾았다 1. 고려독립청년당의 독립투쟁 현장과 망국의 한이 서린 위안소 스마랑 소재 스모워노(sumowono) 보병훈련장, 취사장에서 1944년 12월 29일 밤 11시에 고려독립청년당이 결성되었다. 이억관(가명 이활ㆍ33) 등 조선인 포로감시원 10명은 흰 천에 혈서로 이름을 쓰고 당가(黨歌)를 불렀다. ‘반만 년 역사에 빛이 나련다. 충의의 군병아 돌격해라. 피 흘린 선배들의, 분사한 동지들의 원한을 풀어주자, 창을 겨눠라(1절).~~ 우리는 고려독립청년당원 해방의 선봉이다. 피를 흘려라.‘ ‘아세아의 강도 제국주의 일본에 항거하는 폭탄아가 되라’ 등의 강령도 발표하고, 불발탄이 되었지만 연합군 포로 수송선 탈취 거사 계획도 세웠다. 이후 당원은 26명이 된다. ① 암바라와 (Ambarawa) 중부 자바의 스마랑과 살라띠까 (Salatiga)시 사이에 위치한 도시로 행정상 스마랑시에 속한다. 식민지 시대부터 암바라와는 족자와 마글랑(Magelang)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철도 허브였다. 스마랑-암바라와-마글랑 (Semarang-Ambarawa-Magelang) 노선은 1977년까지도 운영되었으며 철도박물관도 있다. 암바라와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인 일본 점령기간에는 최대 15,000명의 유럽인이 수용된 포로수용소가 있던 곳이다. 일본의 항복과 인도네시아 독립선언에 이어 1945년 11월20일~12월15일까지 암바라와 주변에서 인도네시아군과 영국군 사이의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이하 원문 참조)

출처 · www.indoweb.org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