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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협-에세이 산책, 그 겨울의 외등
문협-에세이 산책
그 겨울의 외등
김준규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운영위원)
골목길의 외등은 밤이 되어서야 빛을 내기 시작한다. 빌딩 속으로 태양이 숨어버리고 하나 둘 날개를 펴는 박쥐의 긴 행렬처럼 까맣게 도시를 점령하는 땅거미, 두개의 평행선을 이끌고 칠흑으로 달려가는 마지막 열차, 메커니즘의 균일한 운동으로 부서질 듯 내지르는 금속성의 마찰음이 하루의 끝을 향하고 있었다. 일상의 속박에서의 탈출구는 아직도 어둠속에 가려져있고 골목길의 두려움을 걷어내며 달처럼 떠오르는 외등, 백열구의 반사판은 제한된 단위의 각도로 빛을 땅에 뿌리고 하늘은 은둔을 향한 긴 침묵이 어둠속을 질주한다. 각각의 존재를 알리며 생존의 처절한 절규로 소란을 피우던 도시의 함성이 멎고 창백한 불빛이 담장 끝 모서리를 만나 괴사하듯 뭉개지면 이따금 다급하게 들려오는 자동차의 경적소리는 함몰하는 밤의 깊이를 가늠한다.
가난의 징검다리를 수없이 건너고 만난 풍요의 시대에도 아픔으로 얼룩진 과거는 아릿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수십 년 전, 서울 아현동의 산동네. 얼어붙은 도시의 골목길, 눅눅하고 비좁은 다락방에서 자취생활을 할 때는 연탄난로에서 새어나는 지독한 가스냄새와 싸워야 했다. 온기의 손실을 피해 밀봉된 작은 공간엔 방치된 반찬 그릇, 며칠간 모아둔 양말과 속옷들의 냄새로 진동한다. 궁색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던 때의 골목길, 주린 뱃속을 자극하는 빵 가게의 버터 향은 이국적이며 매혹적인 삶의 욕구로 다가오기도 한다. 온 나라가 가난을 물리치자며 팔소매를 걷어 올려 어른들은 건설의 현장으로, 교육의 대열에서 제외된 청소년은 열악한 공장으로 새나라 건설에 무참히 내몰리던 시절이 있었다.
비탈진 삼거리, 전봇대에 간신히 매달려 빛을 내는 외등은 어둠으로 밀려나는 소외된 무리들의 호젓한 집합소였다. 고단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선술집에서 나온 작업복 차림의 중년들이 불그스레한 얼굴로 히죽히죽 웃으며 어떤 이는 담배를 입에 물고 어떤 이는 외등의 불빛이 닿지 않는 담벼락에 실례할 곳을 찾아 주춤거리기도 한다. 산동네의 작은 필통 공장, 야간 일을 끝내고 늦은 밤 귀가를 서두르는 소녀들, 기름때가 채 가시지 않은 가냘픈 손끝에는 야식으로 제공받은 삼립 크림빵이 하나씩 들려있었다. 우울한 시대에도 젊음은 슬픔에 구걸하지 않고 당당하며 맑고 순수하다
…(이하 원문 참조)
출처 · www.indowe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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